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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실천하는 어른|더숲문화재단 탁무권 대표 인터뷰 ①

  • 2026.04.28
  • By 콘텐츠팀

글 사진 송주홍

 

대중이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된 건 2023년이다. 김주완 기자가 쓴 『줬으면 그만이지』를 통해서다.
당시,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은 감동이 아니라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김장하 선생은 진주에서 평생 한약방을 운영했다.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 대부분을 학교와 장학, 시민사회에 후원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책 제목처럼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게 김장하 선생 철학이었다.
그래서 대중은 김장하라는 이름 앞에 ‘어른’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어른 김장하.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어른이 있다.

더숲문화재단 탁무권 대표다. 인터뷰 내내 김장하 선생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닮은 듯, 또 달랐다.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평생 힘써왔다는 점에서는 닮았고, 힘써온 그 궤적을 비교하자면 전혀 달랐다.
김장하 선생이 뒤에서 밀되 간섭하지 않는 쪽이라면, 탁 대표는 앞에서 끌되 생색내지 않는 어른이었다.

책에서 만난 김장하 선생이 따뜻한 어른에 가까웠다면, 탁 대표는 그야말로 불같이 뜨거운 어른이었다.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한국 나이로 일흔 살.
말로는 “이제 나는 에너지를 다 썼으니 다음 세대가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활활 타올랐다.

여전히 그는 현역이다. 


 

목차
책만 파는 장사꾼이 되고 싶진 않았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공간을 꿈꾸며
 

 


 

책만 파는 장사꾼이 되고 싶진 않았다

참여연대 창립회원, 사회혁신공간 데어 이사장,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이사, 노원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회장, 한국 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 성공회대학교 이사,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자리를 거쳤다. 

직업적으로 보자면 노원문고로 시작해 여러 서점과 문구점을 운영했다.
현재는 복합문화공간 더숲, 초소책방, 소전미술관에 이어 더숲 아카데미하우스를 총괄하는 더숲문화재단 이사장이다.
그 역할로 보자면 시민사회 활동가, 문화예술 기획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그를 책방 아저씨나 서당 교장 선생님(더숲에서 한때 아이들 대상 명심보감, 사자소학 등 가르치는 ‘노원서당’ 프로그램 운영)이라 부른다.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후원·지원 받은 단체나 관계자들은 그를 고액 후원자, 기부자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를 잘 모르는 지역민들은 그냥 돈 많은 책방 사장, 성공한 사업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듯, 탁 대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과 시민사회에서 끊임없이 그를 호출했다.

때론 부탁했고, 때론 요구했다.
그 부름에 그는 어떻게든 응답했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놓았고, 이름이 필요하다면 이름을 빌려줬다. 역할과 책임이 필요한 자리면 기꺼이 나섰다. 

“저는 돈을 버는 일과 다른 사람 돕는 일이 제 안에서 이원화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저라는 존재 자체로 사회적 의미가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왔습니다.” 

누군가는 사막에도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사막은 그냥 사막일 수밖에 없다. 나서는 이가 없을 때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양손에 침을 ‘탁탁’ 뱉고, 삽자루를 들었다. 척박한 땅에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심었다. 그렇게 숲을 만들어왔다. 그런 세월이었다. 나서야 할 때 나섰고,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또 나섰다.

대학 때부터 그랬다. 뜨거운 청년이었다.

1976년, 성균관대 사학과에 들어갔다.
유신체제와 장기 집권으로 감시와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사회가 불렀고, 청년 탁무권은 응답했다. 머리띠 둘러매고 반독재를 외쳤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과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에서 활동했다. 시국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그저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냥 그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인 거예요. 저 또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웃음) 사회가 워낙 건강하지 못하고 피폐하다 보니까 저 같은 사람이 조금 특별해 보일 수는 있겠네요.”

20대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새벽에 서대문 골목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저쪽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옆에는 오토바이가 나뒹굴었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우린 어떻게 할까. 괜한 일에 엮이는 게 싫어, 누군가는 짐짓 모르는 척 지나갈지도 모른다.
양심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112나 119에 전화해 상황을 전하고 슬쩍 자리를 뜰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지나가는 택시를 억지로 불러세웠다. 쓰러진 사람을 둘러메 택시에 태우고는 자신도 함께 올라탔다. 그렇게 적십자병원으로 향했다.

그런 청년이었다.
그랬으니 많고 많은 사업 중에 하필 서점을 택한 건 일종의 부채감 때문이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 일을 몇 년 했다.

노원구 상계동에 노원문고를 차린 건 1994년이었다. 

“그때에도 민주화 운동하던 동료들이 있었으니까요. 저 혼자 돈 벌겠다고 사업하는 게 괜히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서점이니까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었죠. 그래서 처음부터 스스로 결심했던 겁니다. 책 팔아서 돈 벌면 기부부터 하자. 실제로 노원문고 문 열고 1년 뒤부터 매달 300만 원씩 지역사회에 기부했습니다.”

물론, 부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엔 책 자체가 귀했다. 누구나 쉽게 책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은 종로나 가야 있었다.
동네엔 참고서 파는 책방이 전부였다.

도서관도 드물었다. 공공도서관이 생활권마다 자리 잡기 시작한 지 20여 년밖에 안 된다. 마을 단위 도서관은 그보다도 한참 뒤에 생겨났다.

그런 시절이었다. 인문 서적 한 권 사려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종로까지 나가야 했다.
당시만 해도 상계동은 재개발이 한창인 변두리 달동네였다. 7호선도 개통 안 했을 때다. 연고도 없는 상계동까지 굳이 와서 서점 차린 건, 그래서였다.

“지역에도 인문 서적부터 실용서까지 다양하게 취급하는 종합서점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도서관이 워낙 많아져서 서점 역할이 축소됐지만, 그때만 해도 지역 서점이 일종의 공공재였습니다. 지역 서점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매우 컸죠. 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금 다른 얘길 수 있는데, 저는 지금도 국민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신문 읽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막 배달된 신문 냄새부터 맡았어요.(웃음) 여하간, 책에 대한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책은 거의 모든 것의 근원이에요. 책이라는 건 모든 정보와 지식과 지혜와 사유의 중심입니다. 영화, 그림, 음악, 게임 등 모든 상상력의 체계적 근원이 저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책을, 누구든 일상적으로 읽었으면 했던 거예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덕분인지, 탁월한 경영 능력 덕분인지, 노원문고는 1년 차부터 흑자를 냈다. 폐업 위기였던 서점 주인들이 하나둘 그를 찾아왔다. 그렇게 인수해 정상화한 서점과 문구점이 한때는 7~8곳까지 늘었다. 그야말로 책 팔아서 돈을 번 거다. 어떻게 하면 책을 팔아서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탁 대표는 책만 파는 장사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테이블과 의자 하나까지도 그는 엄격하게 따진다.

“저는 회전율 낮다는 얘기를 제일 싫어합니다. 직원들이 의자와 테이블 더 놓자는 데도 반대했어요.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누가 책 읽고 싶겠습니까. 반대로 제가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매출을 묻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공간에 어떻게든 의자와 테이블을 더 채워 넣으려고 하겠죠. 결국 서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철학의 문제인 거예요.”

그가 생각하는 서점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공간이다.
책을 읽는 공간으로 만들어놓으니까, 거꾸로 책이 팔린다.

강풍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한다. 따스한 태양이 비출 때 나그네는 비로소 외투를 벗는 법이다. 

 

  →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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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기자

dysl1006@fairtrave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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